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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높이 사설] [눈높이 사설]윤치호의 애국가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14-01-20 05: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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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사설]윤치호의 애국가

“우리 딸 문희의 말로는,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상급반 학생은 일본인 교사들을 ‘거지’라고 부르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는 걸 싫어한단다. 어린 소녀들 한 패가 학교 뒤편에 조선 독립을 기원하고자 조각상 하나를 세워 놓았으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교실 안에서 일본인 교사들 몰래 만세와 애국가를 부른다고 한다.” 윤치호(1865∼1945)가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10월 29일 일기에 쓴 내용이다.

 

윤치호는 한국 근대사에 빛과 어둠을 깊이 남겼다. 17세 때 일본 도진샤(同人社), 21세 때 중국 상하이 중서서원(中西書院), 24∼29세 때 미국 밴더빌트대와 에모리대에서 공부한 그는 그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귀국 후 독립협회 회장, 대한자강회 회장, 대성학교 교장을 지내며 민족의 힘을 키우기 위해 힘썼다. 1912년 일본 데라우치 총독을 몰래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한 ‘105인 사건’의 우두머리로 체포돼 3년간 징역을 살았다. 그러나 차츰 친일로 돌아서 나이가 들어서는 친일 강연 활동, 창씨개명(創氏改名·일본식으로 성명을 바꿈)을 하는 등 일본에 적극 협력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이 17일 미국 에모리대에 윤치호가 한글로 애국가를 쓰고 서명한 문서가 보관돼 있다며 이를 돌려받기 위한 100인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애국가는 작곡가가 안익태라는 것 외에 작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었다.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일부 나왔지만 도산 안창호가 작사자라는 설도 만만치 않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헌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일) 확인 결정에서 ‘태극기, 무궁화, 한글, 애국가는 관습헌법으로 국기, 국화, 국어, 국가의 지위를 갖는다’고 했다. 작사자가 누구든 애국가가 국가라는 데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 1월 18일자 한기흥 논설위원 칼럼

 

정리=양보혜 기자 yangbo@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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