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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령왕릉 발굴 50주년...백제를 간직한 타임머신
  • 조윤진 기자
  • 2021-07-07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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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내부 모습. 문화재청 제공​


피라미드, 타지마할, 진시황릉….

각 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이곳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그 나라의 왕 혹은 최고 권력자를 추모(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하고 존경을 표하기 위해 만든 무덤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곳들 못지않은 대단한 무덤이 있다. 충남 공주에 있는 ‘무령왕릉’이다. 고대 삼국시대 백제의 제25대 왕인 무령왕의 무덤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8일 인근 지역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왕릉 안에서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백제의 찬란한 유물이 쏟아지면서 2015년에는 국제연합(UN)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오늘은 무령왕릉을 발굴한지 딱 50년이 되는 날.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아 올해를 ‘무령왕의 해’로 선포한 문화재청은 오는 10일 왕릉의 주인인 무령왕의 탄생제를 연다. 공주시도 오는 9월 무령왕 동상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무령왕릉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무덤이기에 이토록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일까. 무령왕릉의 역사적 가치와 왕릉의 주인 무령왕에 대해 알아보자.


유일하게 이름표 단 무덤


무령왕릉의 주인인 무령왕의 이름과 사망일자, 통치기간 등이 적힌 지석​


‘무령왕릉’에서 ‘릉’은 왕이나 왕비의 무덤에만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신라시대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천마총은 왜 ‘릉’이 아닌 ‘총’이라는 표현을 쓴 걸까.

답은 ‘이름표가 없기 때문’이다. ‘총’은 왕으로 추정하거나 그에 준하는 사람 무덤 같긴 한데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는 경우 붙이는 말이다. 반면 무령왕릉처럼 주인이 누군지 정확히 확인되면 ‘릉’을 붙이는 것.

무령왕릉에서 함께 발견된 ‘지석’이라는 이름의 네모난 돌에는 무덤의 주인과 사망일자, 통치 기간까지 모두 적혀 있었다. 이렇게 이름표를 가지고 있는 왕의 무덤은 삼국시대 무덤 중 무령왕릉이 유일하다.

무령왕릉은 백제의 무덤 중 유일하게 도굴(허락 없이 왕릉 등을 파내고 그 안의 보물을 빼돌림)되지 않은 무덤이기도 하다. 계단처럼 빼곡하게 돌을 쌓아올리는 고구려의 무덤이나 언덕 높이만큼 흙을 쌓아올리는 신라의 무덤과 달리 백제의 무덤은 벽돌을 쌓아 일종의 방처럼 만들기 때문에 도굴을 당하기 쉽다. 그런데도 무령왕릉은 약 1500년 동안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채 온전하게 보존된 채로 발견됐다. 학계에선 그동안 무령왕릉의 입구가 발견되지 않아 도굴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물이 ‘우르르’


‘진묘수’ 석상인 무령왕릉 석수​


무령왕 금제관식​


무령왕비의 금제관식​

무령왕릉에선 무려 4600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 지석을 포함해 17개는 국보로 지정됐는데, 하나의 무덤에서 이렇게 많은 국보가 나온 것은 무령왕릉이 유일하다.

무덤의 수호신을 상징하는 ‘진묘수’ 석상은 이곳에서 나온 대표적인 국보 중 하나다. 진묘수는 나쁜 기운을 막고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이끈다고 여겨지는 상상 속의 동물. 무령왕릉에서 나온 진묘수 석상인 ‘무령왕릉 석수’(국보 제162호)도 마찬가지로 뿔과 날개가 달린 돼지 모양을 하고 있다.

무령왕과 왕비의 왕관에 꽂았던 장식물인 ‘무령왕 금제관식’(국보 제154호)도 국보로 지정됐다. 왕관 양 옆에 부착하는 한 쌍의 장식으로 얇은 금판에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금장식을 빼곡하게 붙여 만들었다. 왕의 금제관식은 여러 겹의 불꽃 모양이고 왕비의 금제관식은 연꽃 모양을 닮았다. 이 금제 장식으로 6세기 백제의 화려한 금공예술을 알 수 있다.​


천재적인 전략가, 무령왕


무령왕의 초상화​


무령왕이 왕의 자리에 올랐던 501년 당시 백제는 고구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어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무령왕이 왕이 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너진 왕권을 되살리는 것. 무령왕은 중요한 지역 22곳에 왕족을 파견해 각 지방을 다스리게 했다. 나라 곳곳에 미치기 어려웠던 왕의 힘을 왕족이 대신하게 해 왕권을 강화한 것이다.

무령왕은 외교 관계에서도 천재적인 전략가였다. 백제로부터 한강을 빼앗고 계속해서 영토를 탐내던 고구려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낸 뒤 고구려의 성을 공격해 백제인의 자존심을 찾기도 했다. 521년에는 중국 양나라에 ‘(백제가) 여러 번 고구려를 격파해 다시 강국이 되었다’라는 내용의 문서인 ‘갱위강국’을 보내 백제의 중흥(쇠퇴하던 것이 중간에 다시 일어남)을 알리기도 했다.​​

▶어린이동아 조윤진 기자 koala6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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