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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쿠샤’ 실내 복원한 최지혜 국민대 겸임교수 인터뷰...단 6장의 흑백사진으로
  • 이채린 기자
  • 2021-04-05 14: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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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실내 복원한 최지혜 국민대 겸임교수 인터뷰...단 6장의 흑백사진으로



최지혜 국민대 예술대학 겸임교수


딜쿠샤 전시관. 서울시 제공



흑백사진에 담긴 딜쿠샤 내부(왼쪽)와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된 딜쿠샤 전시관 내부



앨버트 테일러


딜쿠샤 전시관에 있는 조선시대 삼층장

최 교수의 책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최 교수 제공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는 주변 집들과는 사뭇 다른 붉은 서양식 벽돌집이 있다. 바로 3·1운동 독립선언서를 해외에 최초 보도한 미국 통신사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가족과 약 25년간 살았던 ‘딜쿠샤’다.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테일러의 부인인 메리 테일러가 이름을 지었다.

1896년 광산 사업을 위해 조선에 들어왔다가 조선과 사랑에 빠진 테일러는 일제의 방해를 무릅쓰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일제의 잔혹한 행동을 적극 취재해 전 세계에 알렸다. 1942년 일제에 의해 테일러가 강제 추방되면서 딜쿠샤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2006년 그의 아들이 어린 시절 부모님과 살던 딜쿠샤를 찾으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2017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딜쿠샤는 지난달 ‘딜쿠샤 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전시관 1, 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살았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주는 핵심 공간이다. 이렇게 실내를 복원하는 데 힘쓴 인물은 바로 최지혜 국민대 예술대학 겸임교수. 최근 이 과정을 담은 책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을 펴낸 그를 1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시절 물건

최 교수는 테일러 가족이 딜쿠샤 내부를 찍었던 흑백사진 단 6장을 토대로 2년여 간 고증(옛 자료에 기초해 일정한 증거를 세우고 이론적으로 밝힘)한 끝에 복원했다. 먼저 사진을 고화질로 스캔해 가구부터 작은 놋쇠 그릇까지 하나하나 확대해보면서 어떤 시대의 어떤 물건인지 밝혀냈다. 그 뒤 국내 및 해외 골동품 판매 사이트들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사진과 가장 비슷한 물건들을 찾는 작업을 했다.

“테일러 부부는 중국 북경에 지점까지 냈던 무역 업체 ‘테일러 상회’도 운영했어요. 그러다보니 조선, 서양뿐 아니라 중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고 집에는 다양한 나라의 물품들이 있었지요.”

조선시대에 쓰던 수납장인 검은색 삼층장과 병풍, 1920년대 미국 가정에서 쓰던 램프 및 화목난로(나무를 땔감으로 한 난로), 청나라 시대 램프 받침대 등 다채로운 물건들을 찾아 전시관을 채워 넣었다.

“당시에 제작 및 사용된 물품을 최대한 구하려고 했어요. 서양에는 딜쿠샤 같은 ‘하우스 뮤지엄(박물관으로 만들어진 집)’이 꽤 많아요. 하우스 뮤지엄은 보통 집 자체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당시 물건으로 관람객들이 그 시대에 몰입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해요.”

그는 딜쿠샤가 “우리나라의 생활상이 서구식으로 변화는 길목에 있는 독특한 집”이라며 “동시에 우리나라에 많은 애정을 가졌던 서양인이 살던 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양식 가구와 장식은 고종 때 조선에 살았던 외국인들의 집을 시작으로 한국 전통 양식과 섞여 일상생활 속으로 퍼졌다.

아르바이트로 시작

우리나라에서 서양 근대 실내장식 전문가로 통하는 최 교수는 2016∼2018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을, 2014년엔 덕수궁 석조전을 복원하는 사업에 참여했다. 석조전은 대한제국 황제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1910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석조건물.

“대학생 때 옛날 바이올린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곳에서 서양 앤티크 가구 경매 카탈로그를 보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후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소더비가 운영하는 미술 전문 교육기관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순수·장식미술사로 석사 과정을 마쳤지요.”

그는 고증을 잘 하려면 “역사, 외국어 실력과 함께 ‘집요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의 물건을 찾기 위해 수십 개의 다양한 키워드를 수많은 해외 사이트에서 검색해야 하고 급기야 어렵게 배송된 물건이 사진과 달라 다시 찾아야 하는 당혹스러운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어떻게 먹고 입고 생활했는지도 중요한 역사라고 생각해요. 거기엔 옛 사람 혹은 그 가족의 독특한 생각과 가치가 오롯이 반영돼 있거든요. 어린이들도 박물관에 갔을 때 숟가락, 그릇 같은 사소해 보이는 물건들을 보며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해보면 어떨까요?(웃음)”




▶어린이동아 이채린 기자 rini1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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