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국제고의 쾌거
한 일본 방송에서 중계된 24일 선발고교야구대회에서 교토국제고 야구부 학생들이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일본 교고 야구선수들에게 ‘꿈의 구장’으로 불리는 한신고시엔구장. JBpress 홈페이지 캡처
동아일보 3월 25일 자 장택동 논설위원 칼럼 정리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1] “배우들은 천장이 낡아 떨어진 강당에서 학생들의 환영식에 참가했다. 올갠(오르간) 하나 없는 강당에서 다 같이 부른 애국가 합창이 끝났을 때 (배우들의) 울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1965년 5월 한국 배우들이 일본 교토의 한국 중고등학교를 방문한 장면을 전한 동아일보 기사 내용이다. 광복 이후에도 가난과 차별을 견뎌야 했던 재일동포(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또는 한국계 일본인)들의 서러움이 배어 있다. 이 학교를 이은 *교토국제고가 24일 일본 고교 스포츠의 꽃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서 값진 첫 승리를 거뒀다.
[2] 교토국제고의 역사에는 재일동포들의 아픔이 묻어 있다. 1947년 교토 시 기타시라카와의 낡은 목조(나무로 만듦)건물에 조선중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뒤 더 나은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새 부지(건물을 세우거나 도로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땅)를 골랐다. 1961년 긴카쿠지 인근에, 1968년 11월에는 가타기하라에 땅을 사들였지만 주민들이 한국계 학교 건설에 강력 반대해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히가시야마구에 세 번째로 부지를 사들인 뒤에도 주민들과 갈등이 빚어졌고 1984년 8월에야 학교 건물이 완공됐다.
[3] 일본 고교 야구선수들에게 니시노미야의 한신고시엔구장은 ‘꿈의 구장’으로 불린다. 3940개의 고교 야구팀 가운데 0.8%인 단 32개 팀만 이 구장에서 열리는 봄 고시엔 무대에 선다. 1924년 창설된 봄 고시엔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코로나 사태를 맞은 지난해를 제외하고 93번째 열리는 동안 외국계 고교가 출전한 것 자체가 처음이다. 더욱이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죽음을 무릅쓰고 치열하게 싸움) 끝에 역전승했다. 학생 정원 131명의 작은 학교가 야구부 창설 22년 만에 이뤄낸 쾌거(통쾌한 행위)다.
[4] 이날 고시엔구장에선 ‘동해 바다 건너서…’로 시작되는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두 번 울려 퍼졌다. 1회가 끝난 뒤에는 두 학교의 교가가 각각 흘러나왔고, 경기가 끝난 뒤 승리한 학교의 교가만 한 번 더 방송됐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다만 자막에는 ‘동해(東海)’ 대신 ‘동쪽의 바다(東の海)’라고 표기했다. 동해 명칭을 둘러싼 한일 간의 신경전을 감안(여러 사정을 참고해 생각함)한 번역일 것이다.
[5]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고시엔 출전의 의미에 대해 “조선통신사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최근 얼어붙은 한일관계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 교장의 바람대로 고시엔에서 한국계 학교의 선전이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한일관계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까.
▶어린이동아 이채린 기자 rini1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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