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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등록문화재 된 우리 고유 점자 체계 ‘훈맹정음’, 과학적인 한글 원리, 고스란히
  • 김재성 기자
  • 2021-01-19 1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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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된 우리 고유 점자 체계 ‘훈맹정음’


송암 박두성 선생. 동아일보 자료사진


훈맹정음 점자표 사진. 문화재청 제공


엘리베이터에서 숫자 버튼을 누를 때 옆으로 오돌토돌 새겨진 점을 볼 수 있다. 층별로 생김새가 각기 다른 이 점은 시각장애인들의 언어인 ‘점자’다. 점자는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도록 만든 문자로 볼록 튀어나온 점과 평면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점이 찍힌 곳과 찍히지 않은 곳을 조합해 하나의 글자를 표기하는 것.

나라별로 언어가 다르듯 점자 표기법도 다르다. 우리 한글은 1443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돼 반포됐다. 그로부터 약 500년 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을 잘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 점자 표기법을 다룬 ‘훈맹정음’이 만들어졌다.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이 우리 고유의 점자 체계를 만들어 발표한 것.

문화재청은 최근 ‘훈맹정음’을 포함해 점을 찍을 때 사용하는 제판기와 점자타자기, 한글점자의 제작과정을 기록한 일지 등 박두성 선생의 유물 48점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시각장애인 문화유산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것은 처음. 박두성 선생이 만든 ‘훈맹정음’ 점자의 원리와 표기법은 100년 가까이 거의 그대로 이어지며 지금도 사용된다.

‘훈맹정음’의 우수성을 살펴보기 위해 유물이 전시돼 있는 ‘송암박두성기념관’(인천 미추홀구)을 최근 찾았다.

64개 표기만 알면 모든 글 읽는다


기념관 입구에는 설치미술 형태의 박두성 선생 초상화가 전시돼있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제공


초성 자음 ‘ㄱ’과 ‘ㄴ’의 점자 표기

‘훈맹정음’에선 6개의 점을 조합해 한글 글자를 표기하는 방식을 다룬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 3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3개 총 6개의 점으로 구성된 ‘6점식 점자’의 1∼6번 점 중 특정 점을 도드라지게 해 글자를 나타내는 것. 예를 들어 4번 점 하나가 도드라지면 ‘ㄱ’이라는 글자를, 1, 4번 점이 동시에 도드라지면 ‘ㄴ’이라는 글자를 표현하는 식이다.

1913년 제생원 맹아부(지금의 서울국립맹학교) 교사로 발령받은 박두성 선생은 “눈이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두뇌가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니 시각장애인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한글말살정책이 있었던 1920년 그는 일본어 점자로 공부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안타까워 한글 점자 연구를 시작했고, 일제의 감시 속 6년간의 연구 끝에 훈맹정음을 발표했다.



모음 ‘아’와 ‘야’의 점자 표기

훈맹정음은 시각장애인이 외워야 하는 점자의 수를 최대한 줄인 것이 특징이다. △초성 자음 13자 △받침 자음 14자 △모음 21자 △약자(자주 사용하는 글자) 15자 △점을 하나도 찍지 않은 빈칸 등 총 64개 점자만 외우면 한글로 된 모든 글을 읽을 수 있는 것. 하나의 점자 표기를 알면 다른 점자 표기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한 것도 장점. 예를 들어, ‘아’의 표기는 1, 2, 6번 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야’를 표기하려면 ‘아’ 표기와 대칭을 이루는 3, 4, 5번 점을 도드라지게 하면 된다.

송암박두성기념관의 이용행 사회복지사는 “영어 점자의 경우 약 130개의 점자를 알아야하지만 한글 점자는 64개만 알면 모든 글을 읽을 수 있다”며 “박두성 선생이 만든 약자를 활용하면 64개보다 더 적은 수로도 한글을 읽거나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규칙 적용해 익히기 쉬운 ‘점자’​


최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박두성 선생의 유물. 오른쪽으로 박두성 선생이 쓰던 로울러와 점자타자기가 보이고 맨 뒤에는 제판기가 전시돼있다

박두성 선생은 맹인사업협회를 만들어 당시 장애로 피해를 본 이들을 구제하기도 했다. 자신의 집을 협회 사무실과 점자책 도서관으로 사용했을 만큼 시각장애인들에 큰 열정을 쏟았다. 박두성 선생의 집 대문에는 큰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행인들에게 ‘태극 문양이 그려진 집’이라고 물어 길을 쉽게 찾아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ㅁ’의 초성 자음과 받침 자음의 점자 표기. 초성 자음 자리를 한 칸씩 내리면 받침 자음이 된다​

해외에서 쓰는 ‘6점식 점자’를 국내에 도입한 것도 박두성 선생이었다. 훈맹정음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네 개의 점을 활용한 ‘4점식 점자’가 사용됐는데, 4점식 점자는 한글에만 있는 받침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받침을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6점식 점자를 도입한 것. 받침 자음이 새로 생기면 암기에 부담을 느낄까 걱정한 그는 내려쓰기나 대칭 규칙을 적용해 초성 자음 표기법과 규칙을 알면 받침도 익히기 쉽게 만들었다. 가령 1, 5번 점이 도드라진 초성 ‘ㅁ’을 받침으로 표현하려면 한 줄 내려 표기해 2, 6번 점을 도드라지게 한 것.

시각장애인을 향한 사랑으로 ‘손끝으로 읽는 한글’을 만들어낸 박두성 선생. 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훈맹정음’은 100년 가까이 이어지며 오늘날에도 시각장애인들에 큰 빛이 되어주고 있다.​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ㆍ손희정 인턴기자​

▶어린이동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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