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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부색 차별 말고 평등하게 기회를 주자”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09-02-09 1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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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은 링컨 탄생 200주년

200년이 지나도 생생한 링컨 대통령의 메시지

 

12일은 링컨 탄생 200년이 되는 날이다. 경제난 극복과 국민통합을 위한 링컨식 지도력을 갈구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맞물려 링컨은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링컨이 여전히 추앙받는 이유는 가난을 딛고 성실과 정직으로 대통령까지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정적을 국방장관과 재무장관으로 기용해 포용력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분열 위기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해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미국의 변방 켄터키 ‘싱킹 스프링 팜’
켄터키 주 시골 마을 하젠빌에는 링컨 생가 ‘싱킹 스프링 팜(Sinking Spring Farm)’이 있다. 참나무와 찰흙으로 만든 이 오두막집은 방 한 칸에 문과 창문이 각기 하나인 작은 집. 침실과 거실 부엌까지 겸한 방 하나에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
링컨은 이곳에서 두 살까지 살다가 16km 떨어진 노브 크릭 농장으로 이사해 7세까지 지냈다. 아버지를 도와 밭에 호박씨를 뿌리고 냇가에서 멱을 감다 익사할 뻔하기도 했다. 책벌레 소년은 학교에는 못 갔지만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전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
그가 살던 하딘 카운티는 16세 이상의 백인인구가 1627명인 데 비해 흑인 노예는 1007명이었다. 쇠사슬에 묶인 채 보트에 실려 팔려가는 노예의 참상을 보고 그는 노예제 폐지 결심을 굳혔다.

링컨 생가인 ‘싱킹 스프링 팜’에 만들어진 대리석 기념관과 링컨이 소년 시절을 보낸 노브 크릭 농장. 오른쪽 작은 집은 당시 오두막집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하젠빌=연합뉴스>

○경제적 자유=정치적 자유
링컨은 ‘기회의 평등’을 강조했다. 그는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자유가 바로 정치적 자유의 바탕이라고 생각한 것. 그래서 노예제도를 없애는 것이 필요했다.
그는 무수한 반대를 무릅쓰고 남북전쟁 중인 1862년 9월 역사적인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한 명의 노예도 해방하지 못했다. 당시 북부에는 노예제가 없었고 노예제가 있는 남부에는 해방선언이 전혀 효력을 미치지 못했다. 3년 뒤인 1865년 1월 수정헌법 13조에 의해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링컨 탄생 기념 우표
○링컨을 추모하며
1865년 링컨이 저격당한 포드극장이 보수공사를 마치고 11일 재개관해 16일부터 ‘오픈 하우스’ 형태로 일반에 공개된다.
포드극장은 1862년 노예해방 선언을 앞두고 5개월 동안 링컨의 개인적 정치적 역사적인 고민과 결단을 그린 연극을 재개관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린다.
스미스소니언 미국사박물관도 4월까지 전시회 강연 공연을 준비하고, 공영방송 PBS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을 12일 방영할 예정이며, 히스토리채널은 대통령의 날인 16일 ‘링컨의 시신을 훔치다’라는 특집기획물을 내보낸다. 링컨 탄생 기념 1달러짜리 은화, 우표 등도 기념품으로 이미 등장했다.
<허운주 기자> apple297@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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