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뉴스
  •  [인물포커스]양기락 한국야쿠르트 사장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08-07-13 16:32:45
  • 인쇄프린트
  • 글자 크기 키우기
  • 글자 크기 줄이기
  • 공유하기 공유하기
  • URL복사

[인물포커스]양기락 한국야쿠르트 사장

36년 11개월간 400억 병이 팔린 유산균 발효유. 1971년 8월 선보인 ‘야쿠르트’다. 이는 1초에 34병이 팔린 셈이고 눕혀 늘어놓으면 지구를 73바퀴나 돌 수 있는 개수다. 국민 1인당 800병씩 샀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사랑에 보답하듯 한국야쿠르트는 사회공헌사업에도 열심이다. 과학인재 배출의 산실인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를 30년째 후원해 입상자들에게 선진 과학기술의 현장을 둘러볼 기회를 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정점에 창업주 윤덕병 회장이 있고 양기락(60) 사장이 실제로 일을 수행한다.
양 사장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을 싫어하고 고지식하지만 성실하게 한우물만 판다”는 평을 듣는다. 다음은 10일 양 사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양기락 한국야쿠르트 사장. 그는 10일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최고가 돼 있을 것’이란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국야쿠르트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 초중고교시절의 결정적 경험이 있다면….
“중학교 2학년 때 늦잠을 자 학교에 지각한 적이 있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훌륭하게 될 수 없다’며 호되게 야단치셨죠. 깊은 교훈이 됐고, 그 후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시간과 약속은 꼭 지키려고 했어요. 이런 성실함이 저를 이끌어 온 버팀목이었습니다.”
―평사원에서 전문경영인이 되기까지는….
“1975년 사원으로 입사해 자재, 기획, 재무 등의 부서를 거쳐 2007년 최고경영자(CEO)가 됐어요. 어느 부서에 있든지 ‘회사의 주인이자 대표’란 생각으로 업무에 임했습니다. 주어진 업무에 최고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거죠. 실수도 있었지만, 업무에 대한 성취가 차곡차곡 쌓인 덕분이라고 봅니다.”
―어린시절은 어땠나요.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은 시골입니다. 학교를 마치면 부모님 일을 도와드려야 했고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러나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마음껏 뛰어놀았어요. 그래서 학교와 학원만 오가는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도 듭니다.”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를 30년째 후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인재가 곧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야쿠르트는 또 ‘사랑의 손길 펴기 운동’과 ‘전국어린이건강글짓기대회’ 및 ‘유산균과 건강’ 국제학술 심포지엄 등을 후원합니다. 사랑의 손길 펴기 운동은 모든 임직원이 매달 급여에서 1%를 떼 불우이웃을 돕고 소년소녀가장에게 장학금을 주는 운동입니다.”
―경영철학이 있다면….
“자율(自律)과 책임(責任) 경영입니다. 권한을 최대한 현장(사원)에 주죠.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경쟁력을 극대화하려고 해요. 권한 만큼 책임도 뒤따르고요. 또 기업은 ‘이윤극대화’가 최고 목표지만 사회공헌사업을 통한 이익 환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EO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CEO가 갖춰야 할 핵심역량은 ‘미래를 보는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흐름을 읽고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10년, 20년 후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CEO의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선영 기자>sylim@donga.com

●윤덕병 회장과 한국야쿠르트
한국야쿠르트는 ‘건강사회 건설’을 창업이념으로 1969년 설립됐다. 1971년 창업주 윤덕병 회장은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기능성 음료를 생각해 냈고 유통과정 중 변질을 막기 위해 방문판매를 도입했다. 그 뒤 노란 제복을 입고 야쿠르트 병을 건네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한국인의 아침풍경’이 됐고 ‘스킨십 마케팅’이 빛을 발하며 한국야쿠르트는 탄탄한 기업이 됐다. 회사에서는 이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윤 회장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인들이 회사를 소신껏 이끌어 나가도록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다. 또 설립 이후 사장을 거친 사람이 단 4명일 정도로 한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를 대우한다. 1979년 당시 매출액 200억 원에 순이익 7억 원의 조그만 회사였지만 순익의 12%나 되는 당시의 거액을 내놓고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를 흔쾌히 후원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일이었다.
1976년 중앙연구소를 세워 유산균과 기능성 음료 연구에 힘쓴 결과 윌, 메치니코프, 쿠퍼스 등 수많은 히트 상품을 탄생시켰다. 또 1997년 비락을, 2004년 파스퇴르유업을 인수하면서 외형적인 확장을 이뤘고 2006년 자산운용업계에도 진출하는 등 새로운 ‘도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어린이동아에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어린이동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권지단
  • 댓글쓰기
  • 로그인
    • 어동1
    • 어동2
    • 어동3
    • 어동4
    • 어솜1
    • 어솜2
    • 어솜3

※ 상업적인 댓글 및 도배성 댓글, 욕설이나 비방하는 댓글을 올릴 경우 임의 삭제 조치됩니다.

더보기

NIE 예시 답안
시사원정대
  • 단행본 배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