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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오동 전투 100주년… 독립전쟁 영웅들은?
  • 장진희 기자
  • 2020-06-16 16: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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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순서대로 홍범도, 지청천, 이회영, 이범석, 김좌진. 육사 제공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하고 일본에 대한 본격적인 무장(전투에 필요한 장비를 갖춤) 투쟁을 벌였다. 

같은 해 6월 독립군은 만주(일본이 1932∼1945년 중국 동북 지방에 세웠던 괴뢰국) 봉오동에서 일본군과 벌인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이 사건이 바로 독립군이 

일본군에 맞서 처음으로 승리한 ‘봉오동 전투’다. 이어 같은 해 10월 만주 청산리 전투에서도 독립군은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리 100주

년을 기념해 일제강점기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주요 영웅들의 업적에 대해 알아보자.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좌진 장군


독립전쟁 승리로 이끈 홍범도·김좌진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맞아 이 전투에서 독립군 연합부대를 이끈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해를 봉환(모시고 돌아옴)하는 사업을 정부가 추진 중이다. 홍 장군은 현재 중앙아시아 나라 카자흐스탄에 잠들어있다. 머슴 신분 출신이었던 홍 장군은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임금·국가 원수의 생명을 해침)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항거(맞서서 반항함)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만주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로 거처를 옮겨 독립전쟁을 준비한 홍 장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에 올라 1920년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4개월 뒤 청산리에서도 김좌진 장군(1889∼1929)과 함께 승전보를 올렸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이범석 장군(1900∼1972)도 지휘관으로 이 전투에 참가해 승리에 기여했다. 


김 장군은 1917년 만주로 건너간 뒤 1919년부터 북로군정서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한 인물. 북로군정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군사를 양성했던 무장독립운동 단체다. 김 장군은 1920년 2월 독립군 간부를 기르기 위한 사관연성소를 설치해 같은 해 9월 제1회 졸업생 298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는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후에도 약 10년 간 본격적인 항일전투를 전개했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


전 재산 털어 독립군 양성한 이회영


경술국치(일제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사건) 다음 해인 1911년 이회영 선생(1867∼1932)과 6형제는 전 재산을 팔고 서간도(백두산 부근 만주 지방)로 망명(박해를 피해 외국으로 몸을 옮김)한 뒤 신흥강습소(이후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한성(옛 서울) 명문가의 자제였던 이 선생과 가족들은 당시 40만원이라는 큰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 이들은 독립군을 양성해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할 때까지 독립군 지도자 3500명을 배출했다. 이 학교 출신들은 봉오동·청산리 대첩을 비롯한 대부분 독립전쟁에서 주역으로 활약했고, 의열투쟁(일제강점기 개인 또는 소수가 일제를 상대로 벌인 무력 투쟁)의 선봉 역할을 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간 이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반면 동생 이시영 선생(1869∼1953)은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국무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


한국광복군 이끈 지청천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최초의 정규부대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이에 참여한 지청천 장군(1888∼1957)이 총사령관에 취임(맡은 자리에 처음 나아감)하며 광복군을 총지휘했다. 지 장군은 1907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며 군인의 꿈을 키웠다. 몇 년 뒤 일제가 한국 군대를 해산(흩어짐)시키며 학교가 문을 닫자 일본 사관학교로 유학을 가 공부를 마쳤다. 


졸업 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등 실전 경험을 쌓은 지 장군은 3·1운동 이후 만주로 가 신흥무관학교 교장 등을 맡으며 독립군 간부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30년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에 취임한 그는 북만주 일대에서 여러 차례 독립전쟁을 펼쳤다. 1933년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해방 직후까지 한국광복군을 지휘했던 지 장군은 광복 후 정계에서 활약하다 1957년 세상을 떠났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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