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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형사재판 판결문이 복원돼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은 5월 11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맞아 전봉준 등 동학농민군들의 ‘형사재판원본(1895년)’에 대한 복원을 완료하고, 복원된 원문의 디지털이미지를 국가기록원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한다고 10일 밝혔다.
이번에 복원된 형사재판원본은 최초의 근대적 형사재판 판결문으로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대원군 손자 이준용 등 총 217명의 최종 판결선고서가 포함된 217매 분량의 판결기록이다. 이 기록물은 120년 이상 시간이 지나 종이에 황변화(누렇게 변하는 것)가 일어나고 일부 부위는 결실(일부가 빠짐)되며 가장자리가 바스라지고 있어 복원이 시급한 상태였다.
동학농민군들의 ‘형사재판원본’ 복원 전(왼쪽) 후의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이에 따라 국가기록원의 종이복원 전문 인력은 3개월에 걸쳐 오염제거 및 결실부 보강처리를 했으며 한지를 이용한 구조물을 보완하고 우리나라 전통 오침안정법(책의 등 쪽에 다섯 개의 구멍을 뚫고 무명실로 꿰매는 제본 방식)으로 복원했다.
이 형사재판원본은 법무아문권설재판소(지금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재판소), 특별법원, 고등재판소의 판결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법무아문권설재판소 판결문 중 전봉준의 판결선고서(전봉준의 형량을 결정한 최종 판결문)에는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게 된 배경, 1·2차 봉기의 시작과 그 과정 등 전봉준의 행적이 가장 압축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또 당시 사법부가 일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본영사의 서명도 확인할 수 있다.
형사재판원본은 국가기록포털에서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농민군 이름으로도 판결문 내용을 찾을 수 있다.
[한 뼘 더] 동학농민운동이란?
조선 고종 31년(1894)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으로, 1894년 3월 제1차 봉기인 고부 백산 봉기와 9월의 전주·광주 궐기(제2차)로 나뉩니다.
평등사상을 내세운 동학교는 봉건제도(지배계급 내의 주인과 종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통치조직) 중심 사회에 반발하고 탐관오리의 착취, 일본군의 내정간섭에 분노한 농민들의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반봉건·반외세를 외치면서 정부에 대항했지요.
동학농민운동은 관군과 일본군의 제압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 운동은 갑오개혁과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3·1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린이동아 이지현 기자 easy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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