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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랑 놀자]내 소원은 조국의 독립이오!
  • 어린이동아 취재팀
  • 2005-08-12 1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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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랑 놀자]내 소원은 조국의 독립이오!

●안중근(1879∼1910) 황해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만든 서당에서 공부했으며 화승총으로 짐승을 사냥해 명사수로 이름이 높았다. 1904년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상하이로 건너갔다가 이듬해 귀국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 운영했다. 1907년 일본이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해 대한의용군을 조직하고 일본군과 싸웠다. 1909년 12명의 동지와 함께 ‘단지동맹회’란 비밀 결사를 조직했다. 그해 10월 26일 삼엄한 경계 속에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려서는 순간, 권총을 발사해 3발을 명중시켰다. 이토는 즉사했고 그는 현장에서 붙잡혔다. 대한의 독립 주권을 빼앗아간 원흉이자 동양 평화를 깨뜨린 장본인이기에 대한민국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처단했다는 그의 답변에 일본인 재판장과 검찰관들까지 감탄하였으나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다음 해 3월 26일 뤼순 감옥 형장에서 순국했다. ●김좌진(1889∼1930) 충남 홍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공부를 잘했지만 그 못지않게 전쟁놀이와 말타기를 좋아했다. 열다섯 살 때 자기 집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무료로 땅을 나눠 주는가 하면 80칸이나 되는 자신의 집을 학교로 만들고 자신은 초가집에서 살기도 했다.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2년 동안 공부했다. 19세의 나이로 ‘한성순보’의 이사, 오성학교의 교감이 되어 교육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자 교육이나 언론으로 나라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독립군을 양성하기로 결심하여 군자금 모금에 나섰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2년 6개월 동안 투옥됐다. 그 후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해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는 일을 맡았다. 임시정부의 지원을 받아 북간도에 사관연성소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했다. 1920년 북로군정서 소속 독립군을 백두산으로 이동시키던 중 청산리 계곡을 공격해온 일본군과 맞서 3000여 명을 무찔렀다. 이것이 ‘청산리 대첩’으로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함께 독립군 전투 사상 최대의 승리로 꼽힌다.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에 임명됐으나 독립군 양성에만 전념하다가 1930년 1월 한국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청솔펴냄. <김세원 기자>claire@donga.com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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