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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만화영화 40년 발자취
  • 어린이동아 취재팀
  • 1997-09-18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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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만화영화 40년 발자취

우리나라 만화영화 40년 발자취

《올 여름 굵직굵직한 만화 영화제가 세 번이나 열렸고 극장가에서는 세 편의 만화 영화가 상영됐다. 또 우리 나라의 주요 방송 3사(KBS, MBC, SBS)에서도 자체적으로 각각 만화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어떤 이는 ‘갑자기 웬 만화 영화 붐?’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나라 만화 영화 역사가 40년이 넘었고 세계 3위의 만화 제작국이라는 것을 알면 이런 의문을 갖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선 만화 영화의 원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한 영화사에서 만화 제작을 하면 몇십억이 든다, 한 컷을 찍는 데 종이가 몇백 장이 든다, 엄청난 자본과 시간 투입, 그리고 고도의 기술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교과서 한쪽 귀퉁이에 차례로 다이빙하는 선수의 모습을 그려 빠르게 넘겨 결국 선수를 멋지게 다이빙시키는 것. 바로 이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이 탄생된 것이다. 그럼 우리 나라가 최초로 선보인 만화 영화는 무얼까? 1956년 HLKZ―TV에서 방영된 럭키 치약 광고가 최초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이 방송국의 미술 담당이었던 문달부 씨가 전 과정을 혼자 제작한 작품으로 비록 촌스럽기는 하지만 치약을 의인화한 점은 지금도 높이 평가된다. 이렇게 상업적인 용도에서 출발한 우리 나라 에니메이션이 순수 예술 작품으로 선보인 것은 1961년 국립영화제작소가 제작한 실험작 ‘개미와 베짱이’였다. 그러나 4년 전인 1957년에 국도 극장에서 디즈니의 ‘피터팬’ 상영 이후 ‘걸리버 여행기’, ‘아라비안 나이트’, ‘신데렐라 공주’ 등으로 이미 우리 나라 만화 영화가 제작되기도 전에 관객들은 디즈니 만화에 입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1961년 드디어 우리 순수 국산 만화 영화가 개봉됐다. 바로 최초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세기 영화사). 당시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신동헌, 신동우 형제가 온갖 장비를 동원하여 만든 ‘홍길동’은 완성도 면에서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기영화사는 이번 작품의 성공으로 다음 해 ‘손오공’, ‘황금철인’ 등을 내놓았다. ‘황금철인’은 우리보다 10년 먼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일본에 수출되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TV 전파를 탄 해외 애니메이션은 미국 만화영화 ‘개구쟁이 데니스’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서에 더 알맞은 일본 만화 영화가 70년대부터 우리 나라 안방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마린 보이’, ‘타이거 마스크’, ‘밀림의 왕자 레오’, ‘사파이어 왕자’, ‘마징가 Z’, ‘알프스 소녀 하이디’, ‘캔디 캔디’, ‘그레이트 마징가’ 등이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어린이 시청자들을 TV 앞에 붙들었다. 이 당시 일본 작품은 수입이 금지되었으나 시청률을 올리는데 급급했던 방송사들은 일절 작품의 국적, 제작자 등을 표현하지 않았고 일본의 분위기를 풍기는 부분은 삭제했다. 시청자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이 작품들의 주제가까지 모두 외어 부르는 엄청난 애정을 쏟았던 것이다. 만화 영화 제작보다는 수입이 훨씬 싸다는 이유로 수입에만 열을 올렸던 방송사의 잘못된 욕심으로 인해 우리 만화 영화계는 기반을 잃었고 창작 대신 일본, 미국의 만화 영화를 대신 그려주는 하청 제작을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극장가에서는 5년 만에 공백을 깨고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 V 우주 작전’으로 만화 영화가 부활했다. 국산 로봇 만화사의 산 증인 김청기 감독은 ‘로보트 태권 V’를 비롯하여 ‘무적의 용사, 황금날개 1,2,3’(78년), ‘날아라 원더 공주’, ‘혹성 로보트 썬더·A’, ‘스페이스 간담 V’ 등 1985년까지 로봇 작품을 발표했다. 다시 시작된 극장 만화의 인기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소년동아일보에 15년 동안 연재되었던 ‘소년 007, 은하 특공대’를 비롯, ‘엄마 찾아 삼만리’, ‘황금 연필과 외계 소년’ 등 공상 만화가 붐을 일으켰다. 이 후 이상무의 스포츠 만화 영화인 ‘독고탁’ 시리즈가 상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극장 만화 영화에 비해 부진을 금치 못했던 TV 만화 영화는 87년에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바로 이현세 만화 ‘떠돌이 까치’(KBS)와 ‘달려라 호돌이’(MBC). KBS는 같은 해 추석날 ‘아기공룡 둘리’와 첫번째 TV시리즈물인 ‘동화나라 ABC’를 제작했다. 이후 ‘까치’, ‘독고탁’, ‘둘리’ 등을 소재로 두 방송사는 경쟁을 하듯 방학·추석·신년 특집으로 만화 영화를 꾸준히 선보였고 시청자들은 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80년대 말부터 방송사는 해외 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기 시작하며 그동안 발휘하지 못한 만화 영화 제작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면서 두 방송사는 우리 전통적인 캐릭터를 구상하여 MBC는 ‘머털도사’ 시리즈를, KBS는 우리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 시리즈를 방영하였다. 90년대 들어 다시 극장가에는 ‘인어 공주’, ‘미녀와 야수’ 등 디즈니 만화가 판을 치고 TV에서는 예전에 제작된 만화가 다시 상영되는 등 일본 만화 영화가 수가 적은 국내 만화 영화를 밀어붙였다. 서양 만화 일색이었던 극장가에 95년 첫 국산 만화 영화였던 ‘홍길동’이 부활하여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96년 아기 공룡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이 디즈니 만화 영화 ‘노틀담의 꼽추’에 비해 더 많은 관객을 불러들여 한국 만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최근 들어 KBS는 새로 방영 중인 ‘꼬비꼬비 3’을 비롯,SF물인 ‘녹색전차 해모수’를, MBC는 고유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콩딱쿵 이야기 주머니’, 성교육 만화 ‘귀여운 쪼꼬미’를, 그리고 SBS는 롤러브레이드 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피드왕 번개’를 제작 중이다. 또 케이블 TV 투니버스도 이에 가세하여 13부작 ‘영혼기병 라젠카’를 제작하여 10월에 MBC 전파를 통해 방영할 예정이다. 70년대 한국 만화 영화의 열기를 재현하듯 극장가와 방송가에 다시 불 붙는 국산 만화 붐. 이에 대해 외국 기술의 지나친 의존, 다소 진부한 소재, 그리고 이국적인 캐릭터 등 눈앞의 이윤 만을 추구하는 상업적인 관점에서 제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우리 만화를 사랑하는 어린이들이 있고 세계의 시선을 끌어들여 우리 고유의 정서를 전달하는 진정한 한국적 작품을 제작하는 만화계가 있다면 지금 정상으로 날갯짓하는 우리 만화의 전망은 밝을 것이다. 〈유수나 기자〉 어린이동아 취재팀 kid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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