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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유산 등재된 ‘한국의 서원’…그 역할과 가치는?
  • 장진희 기자
  • 2019-07-09 14: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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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등재된 조선의 사립학교 ‘서원’

조선시대 사립학교인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최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총회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성리학(유교 철학) 지식인들이 전국 곳곳에 세운 사립 교육기관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서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성리학이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성리학 발전의 중심지로서 서원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한국의 서원의 역사와 특징을 알아보자.​


경북 안동 도산서원(사진)은 퇴계 이황이 1560년 세운 도산서당을 모태로 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성리학 사회로 이끌다

조선시대 서원은 요즘으로 치면 사립 고등교육 기관이다. 성리학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학교라는 점에서 국가가 건립한 성균관이나 항교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서원에서는 강학(학문을 닦고 연구함)과 제향(제사의 높임말)이 이뤄졌다. 성리학 경전을 연구하는 한편 각 지역에서 배출한 선현(어질고 현명한 옛 사람)에 제사를 올리며 그 뜻을 이어가고자 했다.

서원은 주로 배향(학덕 있는 사람의 신주를 모심)하는 인물의 연고지에 지어졌다. 강학을 위한 공간인 강당과 제향을 위한 사당(조상의 신주를 모신 집) 공간이 구분되었다. 주로 교육 공간이 앞쪽에 있고 뒤쪽으로 제향 공간이 있는 ‘전학후묘’의 구조를 띤다. 향촌(시골의 마을) 지식인들은 서원에서 다양한 사회 및 정치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유식(휴식)과 회합을 위한 공간인 누마루가 남아있는 서원도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서원이 전국적으로 600여 곳에 이르게 된다. 서원의 증가는 지역별로 사림(조선의 정치 주도 세력)이 득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붕당으로 대표되는 양반 세력이 성장하고 왕권이 약화되면서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은 47개 사액서원(왕으로부터 서적·토지·노비 등을 내려 받아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을 제외한 나머지 서원을 없애도록 하는 서원철폐령을 내렸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의 강학당에서 소학과 사서삼경을 배우는 시민들

중국 서원과 어떻게 다를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이후 소수서원)은 중국의 ‘백록동서원’을 본떠 만들었다. 풍기군수 주세붕은 중국의 유학자 주자가 운영한 백록동서원에서 영향을 받아 1543년 현재의 경북 영주시에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왜 서원의 시초인 중국의 서원이 아닌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에 등재했을까.

중국의 서원은 입신양명(출세해 이름을 세상에 알림)을 위한 목적이 강했지만, 한국의 서원은 학문을 닦고 마음을 수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학교로서의 기능도 수행했지만 한국 서원은 사회 깊숙이 침투해 성리학을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 또 중국의 서원이 마을에 지어졌던 것에 비해 한국의 서원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세워졌다. 중국 서원은 공자를 제향했지만 한국 서원은 지역에서 난 스승을 모시고 학파를 만들어갔다. 이 점에서 우리 서원은 조선을 성리학 사회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충남 논산 돈암서원. 문화재청 제공


선현의 뜻 기려요

한국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경북 영주).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뒤 왕에게 요청해 ‘소수서원’이라는 현판과 함께 서적, 노비를 하사 받으며 국가가 공인한 사학기관이 됐다.

도산서원(경북 안동)은 조선에 성리학이 정착하고 서원이 퍼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퇴계 이황을 배향 인물로 삼아 1576년 완공됐다. 도산서원의 주변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 자주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 소재가 됐다.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9곳 중 가장 늦게 지어진 돈암서원(충남 논산)은 김장생을 배향하기 위해 1634년 건립됐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을 이은 예학의 대가. 예학은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나라의 질서를 재건하고자 정립된 성리학의 주제였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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