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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뉴스] 안중근 의사 기록 공개, “죽으면서도 나는 기쁘다”
  • 이지현 기자
  • 2019-05-29 1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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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일제의 심문을 받고 사형집행을 당하던 과정이 기록된 자료가 최근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28일 설립 50주년 및 공공기록물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키 등의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수집·공개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안중근 의사 가묘(왼쪽)와 안중근 의사의 심문 기록이 담긴 ‘쁘리 아무리예’ 신문의 일부. 동아일보 자료사진·행정안전부 제공​

이 자료에는 안중근 의사 의거일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관련 보도가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는 시종일관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체포과정,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 등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1909년 11월 2일 자 ‘쁘리 아무리예’ 신문에 따르면 안 의사는 일본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첫 심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며 “죽으면서도 나는 기쁘다.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보스토치나야 자랴’ 신문에도 안중근 의사의 의연한 모습이 나타난다. 안 의사는 “이토(히로부미)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쁘며 내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라고 말했다.

‘쁘리 아무리예’ 신문 1910년 2월 27일 자는 사형을 선고한 2월 26일 재판 상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보도했다. ‘안 의사가 1시간 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고, 모든 사람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으며, 안중근의 어머니는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 신문의 1910년 4월 21일 보도에는 안 의사가 사형 직후 교도소의 예배당에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전까지는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는 교도소 내 묘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뿐만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영사관 인계과정 등 사후 조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라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실천했던 그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하고자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어린이동아 이지현 기자 easy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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