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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70년 음력 6월 1일, 배중손 등이 삼별초의 항쟁을 일으킴
  • 이지현 기자, 장진희 기자
  • 2019-05-26 15: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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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그날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5월 26일~6월 1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삼별초의 전남 진도군 거점지였던 용장산성의 용장사. 동아일보 자료사진​


삼별초가 몽골에 대항에 끝까지 항쟁했던 제주 제주시 항파두리성​



삼별초는 고려시대 좌별초·우별초와 신의군으로 구성된 특수 군대조직을 일컫는 말입니다. 고려 무신정권 시절 권신(권세가 있는 신하)인 최우가 사병(개인의 병사) 조직으로 꾸린 야별초가 삼별초라는 조직의 시작이었지요.

최우는 집권 초기에 치안 유지를 위해 사람을 뽑고 경찰부대를 조직해 야별초라 불렀습니다. 그 뒤 인원이 크게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뉘어 편성되었지요. 이후 몽골군에 붙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로 이루어진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도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좌별초·우별초와 신의군을 합쳐서 삼별초가 된 것이지요.

몽골의 사신이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는 길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몽골과 고려의 국교는 단절되고 1231년 몽골은 고려를 침입하기에 이릅니다. 몽골과의 전쟁을 피해 최씨 정권은 강화도로 피난을 갔고 몽골의 침입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외면하면서 민심을 잃게 됩니다. 결국 고려 정부는 몽골과 강화조약(평화조약)을 맺고 전쟁을 마무리하지요.

무신 정권은 무너지고 왕과 왕비, 신하들은 모두 강화도에서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갔지만 삼별초는 끝까지 남아 몽골에 저항했습니다. 장군 배중손을 중심으로 새로운 왕과 관리를 뽑아 반란을 일으켰지요. 이것이 바로 삼별초의 항쟁입니다.

강화도에서 싸우던 삼별초는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배를 타고 전남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서 싸웠습니다. 진도도 함락되고 배중손이 목숨을 잃자 이번에는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옮겨 항쟁했습니다. 고려와 몽골 연합군은 160척의 전함을 끌고 제주도에 모여들었고, 삼별초는 있는 힘을 다했으나 결국 진압되었지요. 이렇게 삼별초의 항쟁은 1273년 약 3년 만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1394년 음력 5월 30일​ 정도전, 조선경국전을 지음​


정도전 영정. 동아일보 자료사진​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하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조선경국전)

이성계와 함께 손을 잡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운 정도전. 1394년 정도전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한 법전인 ‘조선경국전’을 태조 이성계에게 바쳤습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통해 권력계층의 부정부패를 막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려 했습니다. 상하 2권의 책으로 이뤄진 조선경국전의 서론에서는 조선이 왕정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본론에는 중국의 6전 체제를 조선 현실에 맞게 정리하고 각 전에서 담당해야 할 업무를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쓰인 조선경국전은 후에 편찬될 ‘경국대전’의 모체(어떤 것의 근본)가 됐습니다.​

1927년 5월 27일​ 근우회 창립 총회 개최​

1928년 근우회 전국대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 여성운동 조직인 근우회는 1927년 5월 결성됐습니다. 근우회 창립을 계기로 흩어져있던 20여 개의 여성 단체들이 한 데 모여 조국의 독립과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1929, 1930년에는 지회가 70여 개로 크게 늘었으며 회원 수는 1929년 5월을 기준으로 29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일본 도쿄 등 국외에까지 단체를 확장했지요. 이들은 1929년 10월 광주에서 일본인 학생이 우리나라 여학생을 희롱한 것을 계기로 같은 해 11월 광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서 학생들을 도와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내부에서 이념 갈등이 심해져 근우회는 1931년 짧은 역사를 뒤로 하고 해산했습니다.

▶어린이동아 이지현 기자 easy27@donga.com,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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