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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History] 피로 물든 1980년 광주
  • 장진희 기자
  • 2019-05-12 13: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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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그날]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5월 12∼18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1980년 5월 18일, 계엄 해제 요구하는 전남대 학생들과 계엄군 충돌



1980년 전남도청 앞에서 전남대 학생들과 시민들이 민주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경택 촬영·518기념재단 제공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사망하자 같은 해 12월 12일, 10·26 사태 수사를 맡았던 전두환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사반란을 일으켜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은 1980년 봄부터 유신 철폐, 신군부의 퇴진 등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6개 대학 25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자 신군부세력은 사회 혼란을 막는다며 1980년 5월 17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비상시 국가가 군사권을 발동해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을 확대하기에 이릅니다.

다음 날인 5월 18일 광주에서 전남대 학생들이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신군부는 공수부대로 구성된 계엄군을 보내 무력으로 학생들을 저지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계엄군의 진압으로 첫날 시위는 해산됐지만 시민과 학생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후 학생 시위에 시민이 합세하며 규모가 커지자 계엄군은 시위대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맞선 광주 시민들은 경찰서와 예비군의 무기고를 열어 스스로 무장한 뒤 계엄군에 저항했습니다. 시민들의 공세에 계엄군은 물러나는가 싶었지만 다시금 광주 시내로 들어가 시민군을 진압했습니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기습공격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일단락됐습니다.​

[한 뼘 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다룬 영화

오는 5월 18일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를 보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게 어떨까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비공식적 작전명으로 알려진 ‘화려한 휴가’를 제목으로 한 이 영화는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맞서 싸우는 광주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습니다. 평범한 학생, 가장이었던 이들이 국가폭력 앞에서 점차 변화하는 과정을 그렸지요.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알린 용감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택시기사 김사복 씨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도 있지요.​



김규식 선생(왼쪽)과 그의 부인 김순애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1919년 5월 12일​​ 김규식,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

“대한의 독립은 국제사회에서 엄중히 다뤄져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미국 로아노크대와 프린스턴대 대학원을 졸업한 ‘유학파’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무총장 자격으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됩니다. 5월 12일 김 선생은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이 회의에 제출하고 일제의 만행(야만스러운 행위)을 폭로합니다. 파리강화회의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연합국이 전쟁의 책임을 묻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1919년 1∼6월 개최한 회의지요.

잠시 임시정부를 떠났던 김 선생은 1923년 1월에 열린 국민대표회의에서 국민위원과 외무위원을 맡으며 복귀해 임시정부의 개편 방안을 내놨습니다. 1933년에는 미국을 방문해 수천 달러의 독립 투쟁자금을 모금해 돌아왔습니다. 김 선생은 1942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내고 1944년에는 부주석에 취임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김구 주석이 이끄는 한국독립당과 김규식 부주석이 이끄는 민족혁명당의 양당 체제를 중심으로 광복을 이뤄냅니다.​


경기 여주시에 위치한 조선효종영릉재실 전경. 문화재청 제공

1649년 음력 5월 13일 조선 제17대왕 효종 즉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서 8년 간 볼모 생활을 했던 비운의 왕자, 봉림대군은 형인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645년 세자에 책봉(임금이 작위를 내려줌)됐습니다. 1649년 인조가 죽자 그해 음력 5월 13일 봉림대군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효종입니다.

효종(1619∼1659)은 청나라에서 겪었던 수모를 되갚아주기 위해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전쟁으로 기운 나라 살림을 일으키는 데 힘썼습니다. 인조가 청나라를 치기 위해 만들었던 어영청(왕을 호위하는 부대)을 키워 군사력을 보강했고, 전쟁을 치를 때 필요한 식량도 여러 곳에 나누어 모아두도록 했지요.

그가 즉위한지 8년째 사대부들은 무리한 군비 확장으로 인해 백성의 생활고가 지속되고 있다며 북벌정책을 거둘 것을 요구합니다. 사대부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던 효종은 더 이상 북벌정책을 이어갈 수 없게 됩니다. 결국 10여 년 간 준비했던 효종의 계획은 1659년 그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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