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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높이 사설] 나루히토 왕과 마사코 비
  • 장진희 기자
  • 2019-05-07 14: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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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사설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눈높이 사설’이 월, 수, 금 실립니다. 사설 속 배경지식을 익히고 핵심 내용을 문단별로 정리하다보면 논리력과 독해력이 키워집니다.



나루히토 일왕(왼쪽)과 마사코 비가 궁전 베란다에서 방문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AP뉴시스

1일 일왕으로 즉위(임금 자리에 오름)한 나루히토(德仁·59) 왕세자에겐 ‘처음’이란 수식어가 여럿 붙는다. 1960년생으로 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세대 첫 국왕이고 200여 년 만에 처음 생전 양위(임금 자리를 물려줌)로 왕위를 계승했다. 영국에서 공부한 유학파이자 부모가 직접 양육한 첫 왕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 퇴임한 아버지 아키히토(明仁) 상왕(자리를 물려주고 들어앉은 임금)만 해도 만 3세가 된 날부터 시종들의 손에 맡겨졌고 부모와는 주 1회 식사 때 만나는 외로운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1993년 맞아들인 부인 마사코(雅子·55)에 대한 순애보(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유형의 이야기), 혹은 그 이후의 왕실 잔혹사도 적잖이 회자(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됐다. 촉망받는 외교관이던 마사코 비는 결혼 직후부터 줄곧 ‘아들 낳아라’라는 범국가적 압력에 시달렸다. 왕실법(왕실전범)에 따르면 왕위 계승은 아들만 가능한데 당시 왕세자의 남동생인 후미히토(文仁)에게도 딸만 둘이었다. 8년 만에 낳은 자식이 딸 아이코(愛子·17)다. 이후로도 “왕가의 대를 끊을 거냐”는 무언의 압력이 이어졌지만 왕세자는 꿈쩍 않고 아내를 감쌌다. 마사코 비는 의사로부터 ‘적응장애(정서적 부적응 반응을 나타내는 상태)’ 판정을 받고 오랜 요양생활을 했고 당시 왕세자는 “궁내에서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는 듯한 일이 없지 않았다”며 아내를 감쌌다.

이런 이유일까. 일본 일각에서는 왕실과 관련해 젠더(性) 격차 논란도 일고 있다. 즉위식에 왕비조차 참석할 수 없는 현실이 이상하다는 지적부터 남성 직계 혈통을 고집한다면 왕실은 조만간 소멸(사라져 없어짐)할 것이라는 걱정마저 들려온다. 일본 국민 4분의 3 이상이 여성 왕위 계승을 지지하지만 현실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2006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여왕 승계가 가능하도록 왕실전범을 개정하려 했으나 마침 후미히토 왕자 부부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그해 9월 히사히토(悠仁·13) 왕자가 태어나자 열도는 축하 분위기에 빠졌다. 그는 1일부터 아버지에 이어 왕위계승 순위 2위다.

1일 0시부터 ‘레이와(令和·2019년 5월 1일부터 적용된 일본의 새 연호)’ 시대가 시작됐다. 2021년까지 장기 집권 발판을 굳힌 아베 신조 총리는 개헌을 통한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내걸고 있다. 아키히토 상왕은 이런 아베 총리를 견제하며 *평화헌법 수호 의지를 드러내왔다. 나루히토 왕세자도 2014년 공식 석상에서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며 호헌(헌법을 보호함)을 강조한 바 있다. 2007년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우정의 가교 콘서트’에서 정명훈 씨와 함께 비올라를 연주하며 양국 우호(서로 사이가 좋음)를 호소한 적도 있다. 나루히토 일왕 시대 일본이 어디로 갈지 관심이 쏠린다.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동아일보 5월 1일 자 서영아 논설위원 칼럼 정리​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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