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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History] 부정선거에 맞선 학생과 시민들
  • 장진희 기자
  • 2019-04-14 15: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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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그날]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기나긴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선 과거에 어떤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매주 월요일 선보이는 ‘역사 속 그날’ 코너를 통해 역사 지식을 쑥쑥 키워보세요. 

역사 속 이번 주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의 같은 날 있었던 사건들을 한 주 단위로 파악합니다. 이번 주는 4월 14~20일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세요. 

1960년 4월 19일, 4·19 혁명 발발



1960년 4월 19일 서울시청 앞에서 고교생들이 ‘민주주의 사수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48년 정권을 잡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불법적인 개헌을 자행(제멋대로 해 나감)합니다. 12년간 유지된 이승만 정권은 또 한 번의 임기 연장을 위해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대대적인 부정행위를 저지르기에 이릅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유권자 협박, 3∼5인조 공개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부정개표, 투표권 강탈 등의 방식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득표율을 크게 높였습니다. 그 결과 대통령 후보인 이승만이 936만 표(85%)를,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이 833만 표(73%)를 획득해 이승만이 당선됐습니다.

같은 날 공공연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 시민과 학생들이 선거를 규탄(잘못을 따지고 나무람)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시위 진압 중 경찰이 실탄을 쏘아 최소 8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총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됩니다.

이후 4월 18일 서울에서는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반공청년단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서울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은 4월 19일 거리로 나와 “이승만 하야(관직, 정계에서 물러남)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습니다. 이날 이후에도 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의 시위는 계속됐고 결국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의 뜻을 밝혔습니다.​

[한 뼘 더] 4·19 혁명 도화선된 김주열의 죽음

경남 마산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김주열 열사는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이날 시위 이후 실종됐던 김 열사는 27일 만인 4월 11일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경찰에 의한 김 열사의 죽음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경기 화성시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에 세워진 기념비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제암리 주민 집단 살해

1919년 3월 31일 경기 수원군 향남면(현 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인근 발안 장터에서 장날을 맞아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3월 말을 전후하여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의 기세가 격렬해지자 일본군은 보복에 나섭니다.

1919년 4월 15일 아리타 도시오 일본 육군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 보병 11명과 순사 2명이 제암리에 도착해 강연이 있다고 주민들을 속여 기독교 및 천도교 신자 20여 명을 기독교 교회당에 모이게 합니다. 주민들이 모이자 일본군은 돌연 출입문과 창문을 굳게 잠그고 주민들을 총칼로 학살(가혹하게 죽임)한 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지르는 만행(야만스러운 행위)을 저질렀습니다. 이후 이 소식을 들은 선교사 스코필드는 참혹한 제암리 현장을 찾아 사진을 찍어 세계에 알렸습니다.


지난 2005년 이시영 선생의 제52주기 추모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이 선생을 추모하고 있다

1953년 4월 17일​, 이시영 초대 부통령 사망​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이 1953년 4월 17일 6·25 전쟁 중 피란처였던 부산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이 선생은 1910년 일제 통치가 시작되자 만주 서간도로 망명해 독립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 선생은 이곳에서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3·1운동 이후에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초대 법무총장 및 국무위원을 맡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요.

광복 후인 1948년 이 선생은 초대 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 정권에 거부감을 느꼈던 선생은 1951년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부통령직에서 물러납니다. 당시 선생은 정치권을 가리켜 ‘시위소찬(능력 없이 관직만 차지하고 있는 무리)’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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