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뉴스
  • [눈높이 사설] 김복동 할머니
  • 장진희 기자
  • 2019-01-31 18:24:09
  • 인쇄프린트
  • 글자 크기 키우기
  • 글자 크기 줄이기
  • 공유하기 공유하기
  • URL복사

동아일보 사설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눈높이 사설’이 월, 수, 금 실립니다. 사설 속 배경지식을 익히고 핵심 내용을 문단별로 정리하다보면 논리력과 독해력이 키워집니다.


고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017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가한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경남 양산이 고향인 *김복동 할머니는 1940년 중국 광둥의 정신대(태평양 전쟁 때 일제가 식민지 여성을 강제로 동원해 만든 무리)로 끌려갔다. 면(面)에서 나온 사람은 “전쟁을 하는데 군복 만들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다. 안 가려고 버텼지만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을 추방할 것”이라 협박해 어쩔 수 없었다. 14세의 어린 소녀는 일본군의 성노예가 됐다. 8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그간의 사정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자식을 이래 만들어서, 저승 가서 조상을 어떻게 만나냐”고 자책하다 6년 만에 화병으로 세상을 떴다.

㉠‘위안부 다녀온 죄’로 타향 부산에서 식당을 하며 숨어 살았다. 66세 때인 1992년 ‘수요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주 새벽 기차로 상경해 일본대사관을 향해 “다른 여자처럼 살 수 없게 맹글어 놓고. 날 좀 봐라”고 악을 썼다. “미안합니다.” 그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1993년 6월 유엔 세계인권대회도 찾아갔다. 김 할머니의 증언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쏟았다. 대회 결의문에 ‘일본군 성노예 범죄 조사기구 설립’이 포함됐다. 일본 언론은 이를 ‘일본 외교의 수치’라 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김 할머니는 피해자를 돕는 모금에 참여했다. 2016년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 강한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앞장서서 구호성금을 냈다. 그는 “나는 ‘일본 사람’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싸우고 있다. 국가를 넘어 사람까지 미워하면 한일관계는 완전히 깨질 것”이라고 했다. 2012년에는 전시(戰時·전쟁이 벌어진 때)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 설립에도 앞장섰다.

수요집회를 다녀온 날 밤이면, 김 할머니는 줄담배를 피웠다. 일본대사관은 집회 때마다 스무 개가 넘는 창문에 커튼을 쳤다. 그렇게 꽉 막힌 대사관을 보고 돌아오면 속이 시커메졌다. 지난달 28일 오후 10시 41분, 김 할머니는 영영 눈을 감았다. 약한 나라에 태어나 힘들었던 할머니, 원하던 사과 한마디를 끝내 못 들었다. 영결식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다. 수요집회를 외면했던 그들에게는 마지막 기회다. 저승에 가서도 듣고 싶은 그 한마디 “미안합니다”, 그거면 된다.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동아일보 1월 30일 자 전성철 논설위원 칼럼 정리​




▶어린이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어린이동아에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어린이동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권지단
  • 댓글쓰기
  • 로그인
    • 어동1
    • 어동2
    • 어동3
    • 어동4
    • 어솜1
    • 어솜2
    • 어솜3

※ 상업적인 댓글 및 도배성 댓글, 욕설이나 비방하는 댓글을 올릴 경우 임의 삭제 조치됩니다.

더보기

NIE 예시 답안
시사원정대
  • 단행본 배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