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뜻하는 ‘참정권’. 그 기본은 투표할 권리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국가는 남녀 모두에게 투표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100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영국에서 30세 이상 여성들이 투표권과 함께 참정권을 갖게 된 지 100년이 되는 올해, 영국 의회광장에 처음으로 여성의 동상이 들어섰다. 그 주인공은 여성 운동가 밀리센트 개럿 포셋(1847∼1929).

포셋은 어떤 활동을 했을까?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힘썼던 이들을 알아보자.


지난달 영국 의회광장에 세워진 밀리센트 개럿 포셋의 동상. 런던=AP뉴시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용기를!

20세기 초반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운동을 벌였다.

10명의 형제 가운데 8번째로 태어난 포셋은 영국에서 첫 번째 여성 의사가 된 언니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전국여성참정권연합(NUWSS)을 세웠고,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여자 대학인 케임브리지대 뉴넘칼리지를 세우기도 했다. 이 공로로 포셋은 1925년 영국 왕실로부터 남성의 ‘경(Sir)’에 해당하는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지난달 영국 런던의 의회광장에 세워진 포셋의 동상은 포셋이 ‘용기가 다른 모든 곳의 용기를 부른다(Courage calls to courage everywhere)’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든 모습이다. 이는 1913년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며 국왕의 경주마 앞에 몸을 던졌던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1872∼1913)을 추모하는 연설에서 포셋이 말한 내용. 데이비슨의 죽음으로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더욱 불이 붙었다.​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타워가든에 세워진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동상. 빅토리아타워가든 제공​

전쟁 후 얻은 권리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는 영국의 과격한 여성 참정권 운동에 앞장섰던 지도자였다.

14세 때 영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던 리디아 베커의 강연을 듣고 여성해방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팽크허스트는 여성 참정권이 의회에서 번번이 무산되자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조직해 지도자로 활약했다. WSPU는 여성 참정권을 의회에 청원(일이 이루어지도록 청하고 원함)하고 이에 대해 연설하는 활동 뿐 아니라 빈 건물에 불을 지르고 유리를 깨거나 단식투쟁을 하는 등 폭력적인 저항을 벌여 영국 정부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다.

영국 정부와의 날선 대치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팽크허스트가 영국의 전쟁 참여를 지지하고 여성들에게도 전쟁에 협력할 것을 당부하며 점차 풀렸다. 전쟁이 끝난 1918년, 영국 정부는 전쟁 당시 여성들의 도움을 인정하며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했다. 이어 1928년 7월, 21세 이상 모든 남녀에게 투표권을 주었지만 팽크허스트는 이 법률이 시행되기 한 달 전인 1928년 6월 세상을 떠났다.


1893년 여성 참정권 탄원서. 뉴질랜드 기록보관소 제공​

뉴질랜드 10달러 지폐에 그려진 케이트 셰퍼드. 리저브 뱅크 제공​

세계 첫 여성 투표권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여성의 선거권을 보장한 나라. 뉴질랜드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지도자는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온 케이트 셰퍼드(1848∼1934)였다.

그는 1876년 여성절제회(WCTU)의 지도자로써 여성 술집 종업원 고용 금지와 청소년 술 판매 금지 등을 의회에 청원했다. 의회가 여성단체의 의견을 무시하자 그는 1888, 1891, 1892, 1893년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서명한 사람의 명단과 함께 의회에 제출했다. 뉴질랜드 성인 여성의 약 25%인 2만5520명의 서명과 함께 1893년 7월 28일에 제출됐던 청원서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뉴질랜드 정부는 1893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법적으로 인정하며 투표권을 보장했다. 현재 뉴질랜드의 10달러 지폐에는 셰퍼드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어린이동아 심소희 기자 sohi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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