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뉴스
  • [눈높이 사설] 총기난사 생존자의 침묵
  • 심소희 기자
  • 2018-03-27 14:57:22
  • 인쇄프린트
  • 글자 크기 키우기
  • 글자 크기 줄이기
  • 공유하기 공유하기
  • URL복사

생존자의 연설, 침묵의 힘

때로 침묵은 그 어떤 웅변(조리있고 당당하게 말함)보다 힘이 세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총기 규제 촉구 집회에 참가한 고3 여학생 에마 곤잘러스의 ‘6분 20초 연설’이 그랬다. 지난달 플로리다주 한 고교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생존자 에마는 침묵의 긴 여운으로 참가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날 에마는 흘러내리는 눈물과 힘겹게 싸우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AR-15가 난사(아무 곳에나 마구 쏨)된 6분 20초 이후, 내 친구 캐런은 다시는 내게 피아노 연습에 대해 불평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앨런은 다시는 동생과 함께 등교할 수 없을 겁니다. 올리버는 다시는 샘이나 딜런과 농구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어 “크리스 힉슨도 다시는, 루크 호이어도 다시는…”이라며 희생자 17명의 이름을 차례차례 부르더니 굳게 입을 다물었다.



연설 도중 말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는 에마 곤잘러스. 워싱턴 DC=AP뉴시스​


묵묵히 눈물만 훔치며 연단에 서있는 에마의 침묵에 참가자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그는 잠시 뒤 알람 소리에 말문을 다시 열더니 “당신의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호소로 짧은 연설을 마무리했다. 명연설로 유명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11년 5월 요란한 이벤트 대신 침묵으로 미국인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처음 9·11테러 현장을 찾아갔을 때였다. 그는 20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추모식을 마친 뒤 방송 카메라 없이 유족들과 만나 위로를 전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담벼락에 대고 소리치는 것 같았던 총기 규제 강화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날 하루만 해도 생존 학생들이 주도한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이란 이름의 집회가 미 전역 800여 곳에서 열렸다. 주최 측 집계로는 워싱턴 집회에만 80여만 명이 운집(구름처럼 많이 모임)했다. USA투데이는 이 추산(짐작으로 미루어 셈함)이 맞는다면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라고 보도했다. 평범한 여고생 에마는 총기 규제의 절박성(다른 일보다도 급한 성질)을 전달하는 데 있어선 말보다 침묵이 더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입만 열면 ‘막말 대잔치’를 일삼는 이 땅의 정치인들, 웅변보다 더 귀한 침묵의 가치를 알아야 국민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언제쯤 깨달을지.​


총기 규제를 주장하며 백악관 앞을 행진하는 학생들. 워싱턴 DC=AP뉴시스


동아일보 3월 26일 자 고미석 논설위원 칼럼 정리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어린이동아 심소희 기자 sohi07@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어린이동아에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어린이동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권지단
  • 댓글쓰기
  • 로그인
    • 어동1
    • 어동2
    • 어동3
    • 어동4
    • 어솜1
    • 어솜2
    • 어솜3

※ 상업적인 댓글 및 도배성 댓글, 욕설이나 비방하는 댓글을 올릴 경우 임의 삭제 조치됩니다.

더보기

NIE 예시 답안
시사원정대
  • 단행본 배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