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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보물찾기] 한파엔 온돌이 최고! 우리나라 온돌의 역사 살펴보니
  • 김보민 기자
  • 2017-12-13 15: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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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엔 아랫목이 최고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어요.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맞다보면 뜨끈뜨끈한 방바닥이 절로 생각나지요. 바닥을 덥혀서 난방을 하는 이런 우리나라의 온돌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우리의 고유한 난방 방식이랍니다. 난로를 이용해 공기를 덥히는 방식의 서양식 난방과는 다르지요.

온돌은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온돌의 역사를 지금부터 탐구해 봅시다.



일러스트 임성훈


방바닥 아래로 열기가


온돌이란 방바닥 아래로 열기가 지나가도록 해 돌로 된 방바닥을 덥혀서 방을 따뜻하게 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전통적인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붙이면 아궁이와 연결된 연기의 통로인 ‘고래’를 통해 연기가 지나가도록 합니다. 고래를 지나는 연기는 방바닥에 깔린 돌들인 ‘구들장’을 뜨겁게 만들지요. 난방의 임무를 마친 연기는 굴뚝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온돌이 깔린 방바닥에서 가장 따뜻한 곳은 어디일까요? 맞아요. 아궁이와 가장 가까운 곳이 제일 따뜻하지요. 이 부분을 ‘아랫목’이라고 불러요. 조상들은 아궁이에 불을 땐 뒤 아랫목에 두꺼운 이불을 깔아놓아 열기가 도망가지 않도록 했지요. 

온돌은 삼국시대 이전에는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쓰이다 삼국시대 때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파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고구려 고분(옛 무덤)인 안악 3호분의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주방을 보면 아궁이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역사책인 ‘구당서’는 ‘겨울에 모두 긴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아래에 불을 때서 따뜻하게 하였다’라고 고구려의 온돌 문화에 대해 쓰고 있지요.

고려, 조선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온돌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조선 4대왕인 세종 때 온돌과 관련된 일화가 있어요. 오늘날의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학생들이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고 하자 세종은 성균관 건물을 수리해 온돌과 목욕탕을 설치하도록 명령했다고 해요. 학자들을 귀하게 여기던 세종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지요.


효율적 과학적 난방 방법


솥이 올려진 아궁이

온돌은 우리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서양의 나라들처럼 의자와 침대를 사용하는 입식(立式·서서 일하는 방식) 문화가 아니라 좌식(坐式·앉아서 일하는 방식) 문화가 생긴 원인 중 하나도 온돌이지요. 방바닥에서 온기가 나오기 때문에 바닥과 가까이 생활하다보니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가고, 최대한 몸의 많은 부분을 바닥과 닿게 하는 식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온돌은 난방과 더불어 취사(밥을 짓는 일)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난방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아궁이 위에 솥을 올려두고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일 수 있지요. 또 온돌은 따뜻한 공기가 위쪽으로 가고 차가운 공기가 아래쪽으로 가는 대류현상을 이용해 방 전체의 공기를 덥힐 수 있는 과학적인 난방 방식이기도 합니다. 연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실내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기도 하지요.

오늘날의 온돌은 땔감을 태워서 불을 지피는 방식이 아니라 전기나 가스를 이용해 보일러로 물을 끓인 후 따뜻한 물이 바닥 밑으로 지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요. 방식은 바뀌었지만 방을 따뜻하게 만드는 조상들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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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동아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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